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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내일을여는역사재단·민족문제연구소ㅣ출판사:민연ㅣ15,000원ㅣ414pageㅣ발행일: 2018.09.01.ㅣISSN 1228-8802ㅣ977122888020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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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평화와 통일의 길로 가려면


약 반세기 전 우리는 험난한 역사의 고개 위에 서 있었습니다. 70년 전인 1948년, 38도선 한반도 이남지역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고 그 이북지역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두 개의 남북 정부는 자신이 한반도 전체를 통할하는 중앙정부라 자처하며 자신들 정부 수립의 근거가 되는 각각의 분단‘국가’에 정통성을 부여하고자 했습니다. 자신의 주권을 지키지 못하고 다른 나라에 빼앗겨 그 식민지가 되었다가 우리 민족사회의 각고한 노력에 다른 나라들의 힘이 더해져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으나, 하나의 주권 국가로 다시 태어나지 못하고 두 개의 분단‘국가’와 분단정부로 이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시대를 이름하여 분단시대라 하기도 합니다.


둘이라서 불편할 것 없고 서로 도와가며 평화롭게 살 수 있다면 반드시 하나여야 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하지만 같은 언어와 문화, 생활권을 공유하던 하나의 민족사회가 서로에 대한 이해를 달리하며 적의를 품은 채 갈라지게 되면, 분할로 인한 불편함을 없애고 더 부강해지기 위해 다시 하나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서로 갈등하고 더 나아가 전쟁도 마다하지 않았던 적이 지난 역사에서 많이 있었습니다. 흩어져 있던 경제권을 하나로 통합하며 확대해 갔던 근대 민족국가시대에는 더욱 그랬습니다. 우리는 그 근대 민족국가시대의 정점인 20세기를 그 전반부는 식민지로 살았고 그 후반부는 분단시대로 살게 되었습니다.


분할된 사회를 다시 하나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대개 상대의 것을 자기와 같은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경우가 많아서 분할된 각각의 사회 안에서는 자신에 비판적이거나 상대의 것 중에서 장점을 인정하거나 제3의 것을 선택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우리가 경험했던 반공독재의 분단시대에는 더욱 그랬습니다. 사회는 ‘반공’으로 획일화되어 다양한 생각이나 가치는 억압되었고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며 평화적인 방법으로 통일해 가자는 생각도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아서 ‘이단’이나 ‘반역’으로 몰리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폭압적이고 획일적인 반공독재체제가 무너지고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다양성의 공간이 열려나갈 때 평화와 통일의 가치는 되살아났습니다. 4월혁명 때에도, 1980년 광주항쟁 때에도, 1987년 6월항쟁 때에도 ‘반공’의 굴레에서 벗어난 민주주의는 평화와 통일의 길로 나아가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역사 진행 과정을 보면, 민주주의가 확산되고 다양성이 확대될수록 우리는 평화롭게 통일에 이르는 길로 나아가게 될 것이며, 그러한 통일은 민주주의와 다양성을 공고히 하고 더욱 넓혀가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오는 10월이 되면 ‘촛불혁명’이 일어난지 2주년이 되고, ‘촛불혁명’으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지도 벌써 1년이 넘었습니다. 지난 4월 27일에는 남북의 정상이 분단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판문점에서 만나 회담하고 ‘판문점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판문점 선언’에서 약속한 이산가족 상봉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때에도 있었지만, 4·27 남북정상회담은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퇴행해 가던 역사 진행을 시민의 힘으로 바로 잡은 후에야 비로소 성사될 수 있어서 또 다른 감격이었습니다.


남북의 정상들이 만나 인사하고 배려하고 상의하는 모습은 여느 정상회담에서 느낄 수 없는 벅찬 감동과 환희를 자아냅니다. 휴전선 이남과 이북에 내 아버지, 어머니, 내 처자식들이 살고 있다는 무언의 끈이 닿아 있어서 그렇지 않을까 합니다. 오지도 가지도 못하며 남북으로 갈라져 서로 적대하며 사는 일상을 깨트린다는 것은 어떤 세대에게는 원래 있었던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고, 어떤 세대에게는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일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이든 반세기 넘게 적대하며 살아온 이력으로 다소 낯설고 생경하지 않을까 합니다만, 우리 현대사의 상처가 치유되고 새 살이 돋아나는 재생의 과정이라 생각됩니다. 그 길이 순탄하기만 하겠습니까만, 분단으로 실패했던 우리 현대사를 반성하고 지금껏 우리 안에 남아있는 실패한 역사의 부유물들을 하나씩 치워간다면 평화와 통일로 가는 길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이번 호 <특집 : 1948년 톺아보기 Ⅱ>에서는 분단정부가 어떤 과정을 거쳐 수립되었으며 그 정립 과정에서 어떤 역사적 질곡이 있었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평화와 통일로 가는 길에 치유되어야 할 역사의 상흔과 청산되어야 할 역사의 폐해들을 짚어보고자 했습니다. 김석범 작가의 대하소설 『화산도』를 친일문제의 시각에서 소개한 글도 이에 다름 아닙니다.


흔히 현대사를 동시대사라 하듯이, 분단의 폐해는 지금까지도 반복되고 있는데,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준비되었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실상을 고발한 글과 식민지 미화 투어리즘의 문제점을 분석한 글을 통해 그 일단을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근대 민족국가를 만들지 못하고 식민지가 되었다가 해방이 된 후에도 분단으로 이어진 우리 근현대사이지만, 우리가 자랑스러워 하고 자부심을 가져야 할 역사도 많습니다. 수탈당하고 억압당하는 민족의 해방과 반공독재에 질식하는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고 목숨까지 바쳤던 투사들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번 호에는 한글 학자에서 민족해방 투사로 변모해 간 김두봉, 항일여성독립운동의 선두에 섰던 김마리아, ‘민족 공산주의’를 꿈꾸었다는 이육사,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기도 했던 김병곤을 소개했습니다.


‘판문점 선언’에서 언급된 종전 선언과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 문제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정전협정의 내용을 소개했고, ‘판문점 선언’의 원본이라 할 6·15남북공동선언의 내용도 소개해 두었습니다. 또한 6·15남북공동선언 이후 남북의 역사학자들이 함께 해온 활동을 소개한 글을 통해 남북간 민간 교류가 어떤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할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지면 관계상 다 소개하지는 못하지만, 옥고를 보내주신 필자 여러분들께 감사드리며 독자 여러분께 일독을 권합니다. 지난 6월에 나왔어야 할 여름호가 피치 못할 내부 사정으로 출간되지 못하고 이번 가을호와 합본호로 나오게 된 점 독자 여러분께 양해를 구합니다.


여름호를 위해 기획되어 지난 5월 18일에 진행되었던 특별대담 <‘4·27 판문점 선언’과 한반도의 미래>는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2(http://www.podbbang.com/ch/14024?e=22623411)에 올라가 있어 이번 합본호에는 싣지 않았습니다. 대담에 참석해주신 강만길, 정세현 선생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9월에 다시 열리리라 예상된다는 남북정상회담에서 결실의 열매가 영글기를 기대하며 이 더위를 이겨봅니다.


2018. 8.
편집장 신용옥



<내일을 여는 역사> 여름·가을 통권 71·72합본호 목차

여는 글
평화와 통일의 길로 가려면 / 신용옥

통일에세이
남북 역사교류의 어제와 오늘 -남북역사학자협의회의 활동을 중심으로- / 홍순권


특집 : 1948년 톺아보기 II
∙ 제헌헌법의 제정 과정과 정신 / 김수용
∙ 제3, 제4의 반민특위를 꿈꾸며 / 허종
∙ 여순사건 – 제주도 파병에 반대한다! / 노영기
∙ 1948년 국가보안법, 내전의 법제화 / 강성현 ∙ 한 눈으로 훑어보는 북한정부수립사 / 김재웅


지금 우리는?
∙ ‘미투(Me, Too)운동’의 역사 - 모든 것을 아는 “남자”들에게 보내는 글 / 한봉석
∙ 저출산, 원인은 무엇이고 해법은 있는가? / 함인희


인물로 보는 역사 
∙ [독립운동가 열전] 김두봉의 재중국 독립운동 – 청년들의 “선생”에서 “동지”로 / 염인호
∙ [독립운동가 열전] 김마리아, 기독교계 항일여성운동의 대모 / 전병무
∙ [식민지 지식인의 엇갈린 선택] 저항의 의지, 친일의 논리 – 방랑을 통해 비교하는 이육사와 서정주 / 홍기돈


사실(史實) 체크 

∙ 고려왕조와 다원사회 / 박종기
∙ 식민지 미화 투어리즘 – 군산 근대문화도시 사업 / 김종수
∙ 정전체제와 남북관계 / 김보영


내일을 여는 책
∙ 『화산도』 이해와 친일문제의 인식 / 권성우


북한의 이해
∙ 한국전쟁 이후 개성 인삼업의 사회주의화 / 이준희
∙ 중국인민지원군,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들? / 박영실


사료의 재발견
∙ 태조 왕건의 유훈, 훈요10조 / 채웅석
∙ 조미수호통상조약(1882) : 관세자주권을 확보하려는 조선의 노력과 좌절 / 한승훈
∙ 6·15남북공동선언 : 남북 정상간 첫 합의, 화해협력시대의 보증서 / 김지형


예인열전
∙ 단원 김홍도를 보는 눈 – 고전주의 회화세계의 개창자 (2) / 최열


예술과 현실의 소통
∙ ‘소리 없는 계엄’, 블랙리스트의 진실 / 송경동


역사와 공간
∙ 용산, 아주 오래된 이방인들의 땅 / 이순우
∙ 온고지신(溫故知新), 새로운 이야기를 향한 탐험의 출발 – 조선 전기 나주목을 찾아서 / 김창회·신동훈


책 소개
∙ ‘사건’을 통해 드러내는 사라진 목소리들 『민주주의 잔혹사』(홍석률, 2017) / 김원
∙ 민달팽이 마르크스, 프로메테우스가 아닌 시지푸스 『카를 마르크스 – 위대함과 환상 사이』(개러스 스테드먼 존스, 2018) / 홍기빈


기고
∙역사학의 소생을 위하여 – 정요근 ‘유사역사학’에 답함 / 윤한택


제11회 강만길연구지원금 수상 소감
∙ 『19세기 후반 조선의 국제법적 지위에 관한 연구』가 나오기까지 / 유바다